지게차·굴착기 전동화, 건설현장 바꾼다
환경부 장관 전동 건설기계 확대 공식화…산업 생태계 전환 속도 붙나
환경부 장관이 지게차를 비롯한 건설기계 분야의 전동화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는 단순한 정책 의지 표명에 그치지 않고, 수십 년간 디젤 엔진 중심으로 구축되어 온 건설기계 산업 생태계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국가 목표 아래 그동안 상대적으로 전환 속도가 더뎠던 비도로 이동 기계(Non-Road Mobile Machinery) 부문에 대한 규제·지원 정책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건설기계의 전동화는 승용차·버스 등 도로용 차량의 전기화와는 구별되는 별도의 정책 과제다. 지게차, 굴착기, 로더, 지게차크레인 등 건설·물류·항만 현장에서 운용되는 기계는 작동 특성상 고출력·고토크 환경에서 장시간 연속 가동되는 경우가 많아 배터리 기술의 현재 수준으로는 내연기관을 완전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환경부 수장이 직접 전동화 추진을 천명한 것은 정부가 기술적 난제를 감안하더라도 정책 드라이브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책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건설기계 전동화 논의는 수년 전부터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가 공동으로 검토해 온 중장기 과제였다. 국내 미세먼지 배출 기여도 측면에서 건설기계는 주요 오염원 중 하나로 지목되어 왔으며, 특히 항만·물류창고·반도체 산단 건설 현장처럼 밀폐에 가까운 환경에서 운용되는 지게차의 경우 작업자 건강 피해와 직결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유럽연합(EU)이 비도로 이동 기계에 대한 배출가스 규제를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주요 건설기계 제조국인 일본과 중국도 전동화 로드맵을 가시화하면서 국내 정책 대응의 시급성도 함께 높아진 상황이다.
산업 구조적 관점에서 볼 때, 건설기계 전동화는 단순히 파워트레인을 교체하는 문제가 아니다. 설계·제조 단계에서 배터리 팩, 전동 모터, 인버터,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등 전혀 다른 핵심 부품 체계가 필요하며, 이는 기존 디젤 엔진 중심 공급망의 전면 재편을 의미한다. 국내 건설기계 제조사들은 이미 전동화 시제품 개발에 착수하거나 글로벌 배터리 업체와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지만, 완성도 높은 양산 체계를 갖추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수반될 것으로 분석된다. 중소 부품 협력사의 경우 기술 전환 역량과 자금력 면에서 대기업 계열에 비해 취약한 만큼, 공급망 내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물류·건설 현장의 운용 인프라 역시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전동 지게차가 확대 보급되려면 현장 내 충전 인프라 구축이 선행되어야 하며, 충전 시간 동안 작업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배터리 교환(스와핑) 방식 도입이나 급속충전 기술의 고도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반도체 산단이나 대형 물류 허브처럼 24시간 연속 가동이 요구되는 현장일수록 이 문제는 더욱 첨예하다. 인프라 투자 비용 부담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임차 지게차 중심의 물류 현장에서 전동화 전환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등 제도적 설계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인력 측면에서도 변화의 파고가 예상된다. 현재 건설기계 정비 인력은 디젤 엔진 구조와 유압 시스템에 특화된 숙련 기술자로 구성되어 있다. 전동화가 진전될수록 이들 인력의 기술 재교육(리스킬링)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으며, 고전압 배터리와 전장 시스템을 다루는 새로운 자격 체계와 안전 기준 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고전압 전기 계통 작업은 감전·화재 등 기존 디젤 정비와는 다른 차원의 안전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에, 현장 안전 교육 체계의 조속한 정비가 과제로 부상한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건설기계 정비 인력 풀을 감안하면, 세대 전환과 기술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이중 부담이 산업계에 지워지는 셈이다.
수요 측면에서는 공공 부문의 선도적 역할이 민간 시장 형성의 마중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공공기관 보유 지게차나 공공건설 현장 투입 장비부터 전동화를 의무화 또는 우선 적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한다면, 초기 시장 규모가 확보되면서 제조사의 양산 투자를 이끌어내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 과거 전기 버스·전기 화물차 보급 사례에서 공공 조달 물량이 시장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경험이 이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전망과 관련해 업계가 주목하는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구체적인 로드맵과 지원 방안의 가시화 시점이다. 장관의 발언이 정책 의지 선언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보조금 체계, 세제 지원, 기술 개발 자금 등 구체적인 정책 수단이 뒤따라야 한다. 두 번째는 전동화 전환 일정의 현실성이다. 기술 성숙도, 가격 경쟁력, 인프라 구축 속도를 고려하지 않은 과속은 현장의 혼란과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 번째는 중소 부품 협력사와 정비 인력에 대한 지원 방안이다. 대형 완성기 제조사 중심의 전환이 아닌, 생태계 전체가 함께 이행할 수 있는 포용적 전환 설계가 이번 정책 추진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건설기계 전동화는 환경 규제 대응이라는 차원을 넘어, 국내 제조업 경쟁력의 미래가 걸린 과제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동 건설기계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이번 정부 방침이 국내 산업의 선제적 기술 축적과 수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의 디테일을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이 무엇보다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