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시티 원주·천안아산 선정…스마트 도시 산업판 재편 예고
국토부, 국내 첫 AI 기반 시범도시 지정…건설·ICT·인력 수요 동반 부상
국토교통부가 강원 원주와 충남 천안아산을 대한민국 최초의 'K-AI 시티' 시범도시로 공식 선정했다. 이번 발표는 정부가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시 인프라 운영 전반에 통합하는 새로운 도시 모델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스마트시티 정책의 질적 전환점을 의미한다.
K-AI 시티는 기존 스마트시티 개념에서 한 단계 진화한 모델이다. 단순히 CCTV나 교통 센서 등을 연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도시 운영 전반에 AI 의사결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교통·에너지·안전·행정 등 복합 인프라와 유기적으로 연동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원주와 천안아산이 시범 무대로 낙점된 것은 두 도시 모두 의료·제조·물류 등 특화 산업 기반을 보유하고 있어 AI 도시 서비스 적용의 다양성과 확장성을 검증하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사업의 배경에는 글로벌 도시 경쟁의 급격한 변화가 자리한다. 미국·싱가포르·아랍에미리트 등 주요국은 이미 AI 기반 도시 플랫폼 구축을 국가 전략 인프라 과제로 격상시키고,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세종·부산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를 통해 관련 기술 역량을 축적해 왔으나, AI 특화 도시 브랜드가 부재하다는 한계가 지적돼 왔다. K-AI 시티 시범도시 지정은 이 같은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정책적 응답으로 볼 수 있다.
국내 스마트시티 정책의 흐름을 돌아보면, 2018년 전후 국가시범도시 지정을 계기로 민관 협력 생태계가 형성됐지만, 이후 사업 속도가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기술 기업과 건설사 간 협업 모델이 정착되지 못하고, 도시 데이터 표준화와 플랫폼 연동에서 시행착오가 반복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번에 'K-AI 시티'라는 독립적 브랜드를 앞세워 새 시범도시를 지정한 것은 기존 스마트시티 사업의 한계를 인식하고 실행력 있는 재출발을 모색하는 포석으로 읽힌다.
업계에서는 이번 시범도시 선정이 건설·ICT·데이터 산업 전반에 걸친 수요 촉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주목한다. K-AI 시티 구현에는 물리적 도시 인프라 구축과 디지털 플랫폼 개발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도로·통신망·에너지 설비 등 전통적 건설 영역과 AI 운영 시스템, 클라우드 인프라, 엣지 컴퓨팅 설비 등 첨단 ICT 영역이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 맞물리는 구조다. 대형 건설사와 IT 기업 간 컨소시엄 방식의 수주 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협력사 및 중소 전문업체에 미치는 파급도 주목할 만하다. AI 도시 인프라 사업은 통상 도시 통합관제, 교통 최적화, 에너지 관리, 시민 서비스 플랫폼 등 세부 모듈별로 전문 기업이 참여하는 구조를 띤다. 이는 소프트웨어·센서·통신 장비·데이터 분석 등 영역의 중견·중소 기술 기업에 새로운 진입 기회가 열린다는 의미다. 반면 사업 성격상 레퍼런스와 기술 인증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검증된 기업과 신규 진입 업체 간의 수주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거론된다.
인력 구조 측면에서는 새로운 직무 수요와 기존 건설·운영 인력 간의 역량 불일치 문제가 구조적 과제로 부상할 전망이다. K-AI 시티 사업은 현장 시공 인력뿐 아니라 AI 모델 운영, 도시 데이터 분석, 시스템 통합(SI) 등 고숙련 디지털 인력을 대규모로 필요로 한다. 그러나 국내 건설·도시 분야에서 이러한 융합형 인력 풀은 아직 충분히 형성돼 있지 않다. 시범도시 두 곳이 동시에 사업을 추진할 경우 숙련 인력의 수급 불균형이 현실적 병목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도 이번 지정의 의미는 작지 않다. 원주는 혁신도시 기반의 의료·바이오 클러스터를, 천안아산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 제조업 산단을 배후에 두고 있다. AI 도시 인프라가 이 같은 산업 생태계와 연계될 경우, 스마트 물류·원격 의료·제조 자동화 서비스 등 지역 특화 AI 응용 산업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단,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지역 산업계와 도시 운영 플랫폼 사이의 실질적 연동 설계가 초기부터 치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시범도시 사업의 실행 체계와 속도다. 과거 스마트시티 사업들이 계획 단계에서의 기대치에 비해 실제 구현 속도가 더뎠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K-AI 시티가 어떤 거버넌스와 예산 집행 구조를 갖추느냐가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다.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 기업 간의 역할 분담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으면 사업은 또 다시 지연과 중복 투자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시범도시 단계에서 실증된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한 표준화 작업과 제도적 기반 정비가 사업 초기부터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K-AI 시티는 도시 인프라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하는 정책 실험이다.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원주와 천안아산의 모델은 국내 다른 도시로 확산되는 동시에 해외 수출형 도시 솔루션의 레퍼런스로 기능할 수 있다. 반대로 실행 과정에서 기술·인력·제도적 준비 부족이 드러날 경우, 정책 신뢰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수 있다. 정부와 업계 모두가 이번 시범도시 지정을 단순한 '선정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 산업 생태계 구축의 출발점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